‘협찬의 후예’ 된 까닭은?

지난 14일 <우리 결혼했어요>(문화방송)의 한 장면. 새 부부로 투입된 솔라와 에릭남이 방을 구하자며 ‘직방’ 앱을 연다. 직방과 연계된 부동산에 가서, 직방 로고가 그려진 차를 타고 집을 둘러본다. 누가 봐도 광고를 위해 설정한 장면 같다.

드라마와 예능에서 간접광고(피피엘 ·PPL)는 필요악이다. 프로그램 제작비를 충당하려면 필요하지만, 그게 시청을 방해하기도 한다.

미니시리즈 기준으로 드라마 회당 제작비는 5억원 남짓. 방송사가 60~70%를 지급하면 나머지는 제작사 몫이다. 이를 간접광고에 기대는 것이다. 우리나라 간접광고 시장은 꾸준히 증가했다. 간접광고가 허용된 2010년 30억원이었던 것이 지난해 400억원으로 10배가 넘었다.

간접광고만 담당하는 전문 대행사도 따로 생겼다. 군소기업까지 합하면 100곳은 넘는다. 대행사의 역할은 생각보다 많다. 기획회의 때부터 참여해 대본을 미리 검토하고 어떤 협찬을 붙일지 고민한다. 협찬사를 찾아가 설득하는 것도 대행사의 몫이다. 협찬사는 조건을 단다. 어떤 기능을 강조하고, 출연 배우 중 누가 사용해야 하는지, 심지어 어떤 장면에서 제품이 등장해야 하는지도 요구한다.

대행사는 합의된 조건을 작가한테 전한다. 협찬 리스트를 받고 대본에 녹여내는 건 작가의 몫이다. 이미 대본에 있는 장면에 협찬품을 녹여내기도 하지만, 대부분 제품을 강조한 장면을 따로 만들어 추가한다.

직장인의 이야기를 다뤘던 <미생>(티브이엔)에서의 인스턴트 커피처럼 내용과 관련 있는 협찬을 받으면 대본에 녹이기 수월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무턱대고 받아온다.

그래서 간접광고가 드라마를 망치기도 한다. 협찬품을 넣으려고 이미 나온 대본을 수정하다 보면 <태양의 후예>처럼 이야기가 산으로 가며 ‘협찬의 후예’로 전락하고 만다. 단순 상품 노출이 아니라 드라마 전체를 지원하면 아예 주인공 직업을 협찬사 임직원으로 바꿔 주기도 한다.

제작사가 갖고 온 협찬품을 군말 없이 대본에 녹여 주는 작가도 있지만, 거부하는 이도 있다. 그럴 경우 현장에서 피디가 마음대로 대본을 수정하고 협찬품을 넣어 제작진 사이 갈등도 빚어진다.

간접광고가 허용된 이래 방송한 드라마와 예능은 대부분 협찬 광고로 홍역을 치렀다. 제작사는 작품을 망치더라도 협찬사의 요구를 안 들어줄 수 없다고 토로한다. 협찬 비용은 요일, 시간, 주연 배우 등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미니시리즈의 경우 1회 노출 가격이 최하 2000만원선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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